당신이 선 자리 어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곳, 알람브라의 궁전

입력 2018-12-30 15:13  

여행의 향기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배경 스페인 그라나다

실연 아픔 달래려 쓴 곡 '알람브라'…"사랑하는 이들이여 그 손 놓지마오"




현실과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배경 스페인 그라나다가 화제다. 미스터리한 전개와 과거 이슬람 왕조의 수도였던 그라나다의 이국적인 풍광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스페인 남부로 떠나보면 어떨까. 이슬람 마지막 왕조가 남긴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에서 시작해 플라멩코의 발상지 세비야를 거쳐 천년 고도 코르도바까지 옛 이슬람 왕조의 숨결이 짙게 밴 풍경 속으로.

그라나다(스페인)=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깃든 그라나다

마법인가, 과학인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투자회사 대표 유진우(현빈)가 그라나다에 갔다가 전직 기타리스트 정희주(박신혜)를 만나고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는 드라마다. 드라마에서 증강현실 게임이 시작될 때면 클래식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흐르고, 주인공은 나스르 왕국 전사와 칼싸움을 겨룬다. 알람브라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결투는 마치 나스르 왕조가 그라나다를 다스리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그라나다를 잃는 것보다 알람브라를 다시 못 본다는 게 더 슬프다.” 나스르 왕국의 보압딜(Boabdil) 왕이 스페인 페르난도 왕에게 그라나다를 내주고 물러날 때 남긴 말이다. 알람브라 궁전은 13세기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가 왕궁을 짓기 시작해 14세기 유수프 1세에 완성됐다.

이후 그라나다는 궁전과 모스크, 시장을 갖춘 도시로 번성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 스페인의 페르난도 2세의 공격을 막지 못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은 궁전을 내어주고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까지 그라나다는 이슬람의 땅이었다. 영토를 되찾은 페르난도 왕도 차마 적이 남긴 아름다운 궁전을 허물지 못했다. 오히려 조금씩 수리해 왕궁으로 사용했다.

1526년 카를로스 5세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짓기도 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라나다에 찬연한 이슬람 문화를 품은 알람브라 궁전이 오롯이 남아있는 이유다.

알람브라 궁전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19세기 스페인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한몫했다. 드라마에서 게임이 시작될 때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기타 선율 역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1896년 타레가는 실연의 아픔을 달래러 그라나다에 와서 달빛이 드리운 궁전을 거닐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단다. 분수와 수로에서 나는 물소리를 트레몰로 주법으로 표현했고, 사랑의 슬픔을 애잔한 가락에 녹였다는 후문이다.

이슬람 왕조의 혼이 깃든 코마레스 궁

세월이 흘러 수많은 여행객이 알람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그라나다를 찾는다. 198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알람브라 궁전은 성곽인 알카사바(Alcazaba)와 나스르(Nazaries) 궁전, 카를로스(Carlos) 5세 궁전과 여름 궁전 헤네랄리페(Generalife) 네 부분으로 나뉜다. 워낙 크고 볼거리가 많아 네 부분을 둘러보는 데 최소 반나절은 걸린다. 그중 백미는 아라베스크 양식의 정수라 불리는 나스르 궁전이다. 나스르 궁전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곳은 왕의 집무실이었던 메수아르의 방(Sala del Mexuar). 안에 들어서면 카펫의 문양처럼 섬세하게 조각된 벽과 화려한 색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타일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창 너머로는 건너편 알바이신 언덕의 풍경이 액자 속 그림처럼 펼쳐진다.

메수아르의 방을 나서면 사각 연못에 비친 코마레스 탑의 반영이 아름다운 코마레스 궁(Palacio de Comares)이 고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코마레스 탑 안 대사의 방(Salon de los Lecones)은 보압딜 왕이 그라나다를 지금의 스페인에 넘겨준 역사적인 장소다. 드높은 천장을 가득 채운 종유석 장식은 우주의 신비를 품고 있는 것만 같다. 대사의 방 앞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으로 12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원형 분수가 놓여있다. 이슬람교에서는 물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 곳곳에 분수를 만들고, 사자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게 디자인했다고. 여기까지만 둘러봐도 왜 보압딜 왕이 전쟁도 하지 않고 알람브라 궁전을 내줬는지 알 것 같다. 유려한 석회 세공, 가녀린 기둥, 물결치는 아치형 장식 등 이슬람 왕조의 혼이 깃든 궁전이 파괴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으리라.


나스르 궁전 건너편 성곽 위 헤네랄리페의 볼거리는 정원이다. 14세기 초에 조성된 여름 별궁으로 정원 안 아세키아 중정(Patio de la Acequia)이 운치 있다. 총 50m 길이 세로형 정원 중앙에 수로를 설치하고 곳곳에 분수를 두어 영롱한 물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사이를 걷다 보니 귀를 스치는 물소리 너머로 익숙한 기타 선율,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들리는 듯하다.

대항해 시대 왕을 알현하던 알카사르 궁전

세비야(Seville)는 그라나다만큼 옛 이슬람 왕국의 숨결이 깃든 도시다. 그라나다에 알람브라 궁전이 있다면, 세비야에는 알카사르(Alcazar) 궁전이 있다. 이슬람 문화에 심취한 스페인의 왕, 페드로 1세가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을 본떠 알카사르 궁전을 세비야에 지은 까닭이다.

알카사르에서도 정교한 아라베스크 문양 세공이 돋보이는 대사의 방은 무데하르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건축의 규모는 알람브라 궁전보다 작아도, 야자수와 열대 식물이 가득한 초록의 정원은 더욱 이국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대항해 시대 이곳은 탐험가들이 스페인 왕을 알현하기 위해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다. 탐험가 콜럼버스도 알카사르에서 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항해를 떠났다.

알카사르 맞은편에는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세비야 대성당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원래 모스크였는데 1402년부터 100여 년에 걸쳐 개조한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래서 한 건물에 이슬람 양식과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공존한다.

세비야에서 알카사르만큼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은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이다. 1929년 라틴아메리카 세계 박람회를 위해 스페인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가 조성한 곳으로, 대규모 건축물이 반달 모양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건물 앞으로는 강이 흘러 보트를 타며 뱃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선 오래전 배우 김태희가 어느 CF에서 플라멩코를 춘 장소로 유명하다. 건물도 아름답지만, 광장 건물 벽면을 장식한 모자이크 타일에는 스페인 각 도시의 문장과 역사적인 사건들을 그려놓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세비야에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질 무렵이면,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가야 한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알카자르와 세비야 대성당 옆으로는 산타크루즈 지구로 스며들면 된다. 플라멩코의 본고장답게 로그 가요스, 엘 아레날 ‘타블라오(Tablao)’라는 공연장부터 세계 유일의 플라멩코 박물관까지 산타크루즈 지구에 포진해 있다.

메스키타를 찾아서, 코르도바

코르도바(Cordoba)는 이슬람 문화를 꽃 피운 흔적을 품은 천년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여행자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다. 페니키아어로 ‘풍요롭고 귀한 도시’란 뜻의 ‘카르투바’에서 유래한 코르도바는 784년 칼리프 왕국의 수도였다. 856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사원, 메스키타(Mezquita)를 중심으로 칼리프 왕국의 흔적과 유대인이 살던 거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메스키타는 785년 알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의 모스크 버금가게 짓기 시작,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987년 2만5000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성했다. 13세기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으로 코르도바가 함락됐을 때 일부 허물어졌지만, 카를로스 5세가 내부에 가톨릭 성당을 지으며 가톨릭과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사원으로 거듭났다. 이슬람 사원 안에 성당이 있다는 점에서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건축물이 됐다. 메스키타 내부에 들어서자 적색과 흰색 줄무늬 말발굽 모양의 아치를 856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메스키타 옆 골목에는 하얀 집들이 골목을 따라 사이좋게 늘어서 있다. 이슬람 시절 유대인들이 살던 ‘유대인 지구’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 안 흰 벽에 걸린 파란 화분마다 붉은 꽃이 활짝 피었다. 걷기만 해도 꽃향기에 취하는 것 같다. 특히 좁은 길 양쪽에 화분을 총총히 걸어놓은 ‘작은 꽃길’은 사랑하는 이와 걷고 싶을 만큼 낭만적이다. 작은 꽃길의 끝에서 뒤를 돌아보자 메스키타의 첨탑이 삐죽 고개를 내밀어 인사한다. 멀리서 온 이방인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여행정보

인천국제공항에서 스페인 그라나다까지 직항은 없다. 직항이 있는 바르셀로나로 가서 기차를 타고 가거나, 유럽 주요 도시를 거쳐 그라나다로 가야 한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 코르도바 역시 기차나 버스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까지는 기차나 버스로 3시간, 세비야에서 코르도바까지는 기차로 약 1시간, 버스로 2시간 걸린다.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은 관람일 3개월 전부터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다. 당일 티켓 구매는 어려우니 예약하고 가는 편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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